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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님께서 작성한 소설 하늘이여 땅이여 표지입니다. 제3부에서는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의 일부가 분실된 것이 사실이므로 향후 출현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온 국민이 알고 있어야 하는 메시지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하늘이여 땅이여 제1부와 제2부를 보지 않았다면 먼저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작가 김진명님의 소설 하늘이여 땅이여 표지입니다

 

1. 해인사는 불교의 삼보 중 하나이다.

 

 

사도광탄은 이야기를 듣고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기미히토 교수에게 토우는 파헤칠 쳐질 당시 토우가 어느 방위를 보고 있었느냐 물어보고 당시 서쪽 방향으로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호사자는 신물을 등지고 앞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신물은 서향을 하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조세형 교수는 기미히토 교수에게 사도광탄과 함께 한국의 유서 깊은 절에 같이 가 보며 어떨까요 제안을 하였더니 좋다고 하여 같이(조세형 교수, 기미히토 교수, 사도광탄, 서영인 원장) 가야산 해인사로 가기로 하여 출발하였으며 도착하자 미리 연락하여 둔 덕택에 학승 한분이 나와 마중하였으며, 학승의 설명으로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 삼보(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법보로 유명하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삼보 법보 중 양산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것으로, 순천 송광사는 국내 최대의 사찰로 유명합니다. 학승이 해인사의 유래를 설명하는 과정에 조교수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며 사도광탄에서 왜 여기 해인사로 가자고 했는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광탄은 여기 해인사에 수많은 보물이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가는 것이 팔만대장경이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인사를 창건한 후 여러 차례 불이 났지만 이 경판고는 아직 한 번도 불이 나지 않았습니다.

 

 

 

 

 

 

2.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 성물이므로 신이 보호합니다.

 

 

큰스님의 안내로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어온 역사가 일행 앞에 그 엄숙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천 장의 경판은 반듯하고 정연한 모습으로 판대위에서 오직 침묵으로 기나긴 세월을 여며오고 있었다. 큰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몽고가 침입하였을 당시에는 김윤후(승려 의병장군)가 몽고군 장군 살리타이를 화살 한방(1232.12.16. 처인성 전투)으로 물리친 적이 있고,

 

 

임진왜란 때는 거창의 송암 김면 장군(15411593)과 합천의 내암 정인홍 장군(鄭仁弘, 1535.9.26.~1623.4.3.)이 막아 냈으며 사명대사의 애제자 소암대사가 그다음에 그리고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령에서 일어나 가야산을 기준으로 의병을 일으켜 팔만대장경과 우리나라를 보호하였습니다. 팔만대장경이란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았는데 큰 스님께서 팔만이란 중생의 번뇌가 8만 4천 가지에 이른다고 설파하시고 그에 대치하는 8만 4천의 설법을 논 하셨기에 그 모두를 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장경이란 뜻은 세 개의 큰 광주리라는 뜻입니다 즉 팔만대장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일체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경판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경판자체가 부패하거나 벌레가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두었다가 만들었고 또한 판이 뒤틀리지 않도록 양끝을 가곡으로 마구리를 하고 또한 옻칠을 한 다음 네 귀퉁이를 동판으로 장식하여 한 장의 경판이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해인사 장경각에서 나올 때 햇빛이 부셔 눈을 가린 적이 있어 서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큰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3. 팔만대장경 일부가 분실된 것은 사실이다 - 과연 몇 장이나 ?

 

그런데 토우가 사람을 죽이고 작동하였다는 것은 토우의 수호신인 팔만대장경에 무슨 위해가 가해졌다는 생각 합니다.. 사도광탄은 경판을 지키는 수호사자인 토우가 움직였다면 확실하지 않지만 대장경판 일부가 일본으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조교수는 확인한 바 팔만대장경의 전문가도 없고 또한 경판 숫자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문화재 위원에서 확인한 바 1968년 경북대학교 서수생(실존인물, 1921.5.30.) 교수가 조사한 것이 1541종에 6844권에 81,240매의 경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대백과사전에는 1501, 6708, 81258 매로 되어 있었다. 즉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재 위원에서 독촉하여 왜 경판의 숫자가 틀리는지 물어보았으나 확실하게 모르고 있었으나 분실된 것은 확실하다고 하다고 하면서 한 장의 문서를 보여 주었다 그 내용인즉 1937년 해인사 주지 장제월이 미나미 총독에게 경판의 도난 사실을 문서로 보고한 내용이다 <국보 및 사찰 재산 도난 보고의 건> “1937.8.28. 일 당사가 안장하고 있는 고려대장경 판목 전부를 인쇄하기 위하여 조사한 바 ~~~~~~ 당사 소유 국보 고려대장경 판목 및 당사 소유재산 귀중품이 도난되었음을 발견하였음 도난 날짜는 알 수 없고 도난 물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대반야바라밀다경 1

나. 대장엄경론 1

다. 석교분기원통초 1장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 돌베개 참조

 

도난 사실이 확인된 이상 지금으로서는 어떤 수량도 대장경의 총 경판수로 단정하여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81,240 매도 81,258 매도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 주장이나 받아드려 팔만대장경의 경판수로 확정할 경우에는 역사의 오류를 범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도 우리나라에서 분실되고 400년 후에 일본 덴리대학교에서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문화재 도둑이죠 이에는 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죠 우리도 훔쳐와야 해결될 것 같습니다). 3부를 마칩니다.

 

여기 3부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독자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며, 아래 다몬드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여러가지 많은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독후감 작성자 아몬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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